흥선대원군 vs. 명성황후: 조선 말기의 권력 투쟁
조선 후기, 조선이 기울어가는 시대에 두 인물이 나라를 이끌고자 했습니다. 한 사람은 강력한 개혁 정책으로 조선을 되살리려 했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나라와 손잡고 권력을 강화하려 했던 명성황후(明成皇后)였습니다. 두 인물의 대립은 조선 말기의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의 권력 투쟁은 결국 조선의 운명을 바꾸게 됩니다.
1. 흥선대원군의 등장과 개혁 정책
1) 섭정으로서의 권력 장악
흥선대원군(이하 대원군)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로, 1863년 철종이 죽고 나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당시 어린 고종이 왕이 되면서, 대원군이 섭정을 맡아 실질적인 나라 운영을 책임졌습니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 사회의 개혁을 추진하며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2) 서원 철폐와 국가 재정 확충
대원군이 추진한 대표적인 개혁 정책 중 하나는 전국적으로 많이 있던 서원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서원은 원래 학문 연구와 유림(儒林)의 교육 기관이었으나, 점차 특권을 누리게 되고 면세 혜택을 받으며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대원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00여 개의 서원을 철폐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려 하였습니다.
3) 경복궁 중건과 강력한 왕권 확립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경복궁을 다시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경복궁을 재건함으로써 왕권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너무 큰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원납전(冤納錢)이라는 강제 기부금을 징수하는 등 오히려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4)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당시 서양 세력들이 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며 통상 교류를 요구했지만, 대원군은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내세워 이를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특히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물리치며 조선의 자주권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조선이 전 세계적으로 뒤처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2. 명성황후의 등장과 외교 전략
1) 명성황후의 정권 장악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이후 권력의 중심에는 명성황후(민씨)가 자리 잡았습니다. 명성황후는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로, 뛰어난 정치 감각과 인맥을 활용해 나라에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대원군이 쇄국 정책과 강력한 왕권 강화를 추진한 반면, 명성황후는 국제 정세를 이용하여 외세와의 협력을 통해 세력을 넓히려고 했습니다.
2) 개화 정책과 일본·청나라와의 외교
명성황후는 적극적으로 개화시키려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정립하며 서구 문물을 도입하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청나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선이 일본과의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3) 임오군란과 대원군의 재등장
1882년 조선 내부의 개혁과 군제 개편 과정에서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습니다. 구식 군인의 불만이 폭발하며 왕궁을 습격했고, 이 과정에서 명성황후는 궁에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이에 청나라가 개입하면서 대원군이 잠시 권력을 잡게 되었지만, 결국 청나라에 의해 강제 연행되며 힘을 잃게 됩니다.
4) 갑신정변과 명성황후의 영향력 확대
1884년에는 급진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이 발생합니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인사들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개혁 정권을 세우려 했지만,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명성황후는 청나라와 더욱 밀착하며 조선 내부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3. 권력 투쟁의 절정과 명성황후의 최후
1) 삼국 간섭과 친러 정책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자 명성황후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위협적으로 여겨 1895년 8월 20일(음력 8월 20일) 명성황후를 경복궁에서 잔인하게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을 크게 뒤흔들었고, 이후 고종은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
2) 대한제국 수립과 대원군의 마지막 행보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조선은 명목상 독립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은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고, 189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명성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의 출범은 조선의 마지막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 투쟁은 조선 말기의 정치적 격동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두 인물의 대립은 단순한 개인 간의 다툼이 아니라, 조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이었습니다. 쇄국과 개화, 전통과 현대가 충돌한 이 시기는 결국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변화의 시기였으며, 대한제국의 출범과 함께 마무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