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말 사회 분위기와 고려 문화유산

고려시대 말 사회 분위기와 고려시대 문화유산

고려 후기(13세기 후반~14세기 후반)는 몽골(원)의 간섭과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정세, 신흥 세력의 등장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고려의 문화와 유산은 고려만의 가치를 유지하며 발전해왔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 말 사회 분위기와 그 시대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고려 말 사회 분위기

1) 원 간섭의 영향

고려는 13세기 후반부터 약 80년간 원나라의 지긋지긋한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 간섭기는 고려의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모든 측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정치적 변화: 원의 정치적인 간섭으로 고려 왕권이 매우 약해졌으며, 고려 왕실은 원의 황실과 혼인을 맺어 가족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원파와 반원파가 의견이 상이하였고, 이는 고려 내부의 정치적으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 경제적 변화: 원은 고려에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였으며, 이는 고려 백성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다. 또한, 원 간섭기 동안 새로운 무역로가 개방되면서 고려의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 사회적 변화: 원의 문물이 고려에 들어오게 되면서 의식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적인 요소가 더해지게 되었다. 또한, 원 간섭기 동안 많은 고려인이 원나라로 끌려가거나 원의 지배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2) 신진 사대부의 등장

고려 말, 기존의 권문세족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사회적으로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새로운 정치 세력인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였다.

  • 사대부의 성장: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신진 사대부는 부패하고 권력 독점을 하고 있는 권문세족을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 방식을 주장하였다.
  • 개혁 요구: 이들은 토지 제도 뿐만 아니라 여러 개혁을 요구하며 특히 중앙집권적 개혁을 요구하여 고려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신진사대부 등장

 

3) 사회 불안과 농민 봉기

고려 후기에는 사회적으로 혼란이 극대화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농민 반란이 발생하게 된다.

  •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14세기 고려는 홍건적과 왜구의 지속적인 침략과 괴롭힘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큰 피해를 입고, 중앙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 농민 봉기: 권문세족의 수탈과 국가의 무능함에 화가 치민 농민들이 봉기를 활발하게 일으켰다.

2. 고려 후기 문화유산

이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고려의 문화유산은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특히 불교 문화와 예술이 눈에 띄고, 실용적인 건축물과 학문적인 발전했다.

1) 불교 문화의 발전

고려는 불교 국가로서 많은 불교 유산을 남겼고, 고려 후기에도 어김없이 불교 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 조각 예술: 고려 후기에는 대형 불상을 많이 제작하였고, 대표적으로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다. 이러한 불상들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주면서 고려의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을 엿볼수 있다.
  • 사찰 건축: 고려 후기에는 많은 봉기와 침략으로 인해 많은 사찰이 불타거나 사라졌지만, 이후 재건된 사찰들이 조금은 남아 있다. 특히 개성의 영통사와 같은 사찰은 고려 후기 불교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 팔만대장경: 몽골의 침략을 극복하고자 국가의 힘을 모아 제작한 팔만대장경은 고려 불교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정교한 목판 인쇄술을 보여준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2) 금속 공예와 도자기

고려 후기에는 금속 공예와 도자기 기술이 최고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변화: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자기인 청자가 점차 쇠퇴하고, 고려 후기에는 실용성이 강조된 분청사기가 등장하게 된다.
  • 금속 공예: 고려의 금속 공예 기술은 고려청자와 함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이었고, 특히 화려한 금속 장식품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고려청자 및 분청사기

 

3) 학문과 인쇄술의 발달

고려 후기에는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되며, 학문과 인쇄술이 큰 발전을 이루었다.

  • 성리학의 확산: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성리학은 고려 후기 신진 사대부 계층에게 큰 영향을 주고, 조선을 건국할 때 사상적 기틀이 되었다.
  • 금속활자 인쇄술: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로 유명하다. 고려 후기에는 더욱 정교한 금속활자본이 제작되었고, 대표적인 유산으로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직지심체요절

 

3. 고려 후기 문화유산의 현대적 의미

고려 후기의 문화유산은 현재까지도 한국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려 시대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불교 예술, 도자기, 인쇄술 등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작품도 많다.

  • 팔만대장경과 해인사: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은 고려인의 신앙심과 목판 인쇄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 직지심체요절: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고려의 금속인쇄술이 당시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하는 유산이다.
  • 고려 불교 문화의 계승: 고려 후기의 불교 예술과 사찰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의 불교 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인사

이처럼 고려 후기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문화적 발전은 계속되었으며, 그 유산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